덕 라이먼 감독의 영화들은, 별로 신선하지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빠른 전개와 그러면서도 여전히 밀도 높은 스토리를 통해 뭔가 새롭게 다가오는 '맛'을 보여주곤 했다. 본 시리즈의 첫 작품인 The Bourne Identity가 그랬고, 비록 '로맨틱 코미디' 장르의 영화긴 했지만 Mr. & Mrs. Smith 역시 마찬가지였고... 하지만,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많이 아쉬웠다. 시나리오 작가들(세 명이나 되는)의 문제였을까.

기본적으로는 마블 코믹스의 X-men과 같은 얼개의 영화---초능력자들과 그들을 억압하려는 세력들의 대립구도---라 한계가 있긴 했지만, 점퍼의 특별한 능력으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좀 더 재미있는 사건들을 고안해 내어 잘 엮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.

주인공 캐릭터가 별로 총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, 세상에 대한 별 고민도 없이 자기 삶에만 신경쓰는 듯 그려져 아쉬움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. 21세기라는 시간대에서 활약하는 초능력 캐릭터 특히 젊은 캐릭터들을 이렇게 자기 삶에만 신경쓰는 모습으로 묘사하는 이 유행 아닌 유행은 별로 재미를 못 주는 듯 하다. 개연성은 높지만 개연성이 재미와 감동까지 보장해주는 것은 물론 아니니까. 아직 보진 않았지만 21세기 '능력자'의 새로운 모습을 담은 핸콕은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깊이 파고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그 부분도 하나의 관전(?) 포인트가 될 것 같다.

여튼, 머리 나쁜 녀석이 초능력 갖게 되면 뭐 문제는 그럭저럭 해결되지만, 주위 사람들이 굳이 겪지 않아도 될 피해를 겪는다거나 쓸데없이 고생한다거나 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 또 하나의 영화라 생각된다. 에라곤의 주인공과 나름 유사하다고나 할까.